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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기능 개선제 종류



*Milk Thistle(밀크시슬; 엉겅퀴)  ---가장대중적인듯.
밀크시슬 속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인 실리마린(silymarin)은 대표적인 간의 항산화제이며 각종 간 질환에 효과가 있습니다. 실리마린(silymarin)은 간세포의 신진대사를 증가시키고 간세포를 독성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탁월한데, 지금까지 세계의 제약회사들이 간을 보호하는 많은 약을 만들어 냈지만 실리마린의 효과에 비견할 만한 것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Schizandra Extract(오미자) --- 최근 추천이 잦아짐.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간염환자에게 오미자를 투여하면 치료효과가 높고, 간보호작용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성 궤양을 예방하고 위액분비를 억제하여 진통작용이 있으며 각종 세균억제 작용을 합니다. 그 밖에 심혈관기능개선, 폐기능개선, 자양강장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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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delion Root (민들레뿌리)
3%의 플라보노이드 익스트렉트제품으로  피를 맑게하고, 간을 정화시켜주고, 담즙분비를 증가시켜줍니다. 담관염, 간염, 담석증, 황달 등에 사용됩니다.

*Beet Root (비트)
비트는 간 해독허브로써 작용할뿐만아니라 피를 정화시켜주는 역할도 합니다.

*Barberry Bark (바베리)
고대 이집트로부터 사용되던 천연허브로 예로 부터 과음이 원인인 간장병의 치료에 사용되었습니다.
주요기능으로는 간기능을 정상화시켜주고 담즙의 분비를 촉진시켜줍니다. 그리고 항균 항염증 작용이 있어 담낭의 염증, 담석에도 좋습니다.

*Artichoke(아티초크)
밀크시슬과 같이 간기능에 놀라운 작용을 하는 식물로 알려졌습니다. 각종 독소로 부터 간을 보호하고 담즙을 증가시켜줍니다. 간세포를 재생시켜준다고 알려졌습니다.

*Bromelain(브로멜라인)
브로멜라인은 단백질 소화를 돕는 탁월한 식물성 효소입니다. 단백질 분해기능은 소화제로 뿐아니라 플라스민(plasmin)의 생성을 자극하여 섬유소를 분해서 염증을 가라않히고 알러지개선, 기관지염, 항암 작용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Garcinia(가르시니아)
섭취된 음식물의 체내 지방합성을 저해, 억제하여 체중조절에 도움을 줍니다. 가르시니아에 들어있는 글루코만난은 혈액속의 콜레스테롤 값을 낮추는 작용을 합니다.

*Guggul(거걸)
예로부터 아라비아와 인도에서 사용되던 민간약재로 현대에서는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예방해 준다고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밖에 갑상선의 기능을 향상시켜주고 체지방을 줄여 체중감량에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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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마린과 우루사 비교 

 

우루사의 경우는 담즙 배설에 영향을 주는데 간에서 배출하는 독소를 잘 빠져나오게 해주는 것에 포인트를 둡니다.(담낭에서의 기능 주력) 실리마린은 간세포 파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구요.(간 내에서 간세포 파괴 방어). 지방(돼지고기 등), 소화가 잘 안되시는 분들은 두 가지를 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병원에서 간수치 높은 환자, 간 질환자에게 실리마린, 우루사 두 가지 제제를 자주 병용처방 합니다. 

 (인용: http://blog.naver.com/basspark/14016439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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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ntly, when i look myself can find out my face lost smile, also it could make me think that i'm having a hard time. 


i was surely to regret about my past times at early and mid 20". but i know surely that it wouldn't help me for go to the next way. so i decided to forgot thinking about it. 


that regrets, i would think just when i have some rest time long after i have a job. 



yesterday, i watched the chinese drama what named 爱情公寓(Ai Qing Gong Yu: The Apartment of Love) comic drama. 

because i've watched Friends of well-known drama by everybody, though AiqingGongYu copyed that contents from Friends on the many parts. but it's actually not to same between expression with Chinese and English. 


nowadays, i've watched this drama just whenever i feel i'm sad right before i'm going to sleep. 

anyway, i watched the words what comes to in my mind yesterday. 


it is the scene when the one actor are persuading one actoress said this.


the actoress got the mind of very sad because she knew she are going to 30 years old through the birthday party of one friend. so she got to scared and sadness mind. also it just looks like that she can't laugh anymore. 


but one of the roommate started to persuade her about we shouldn't think like that simply why it is. 


"many person think that we got a old as times goes by, and they also think their mind are changing to old involuntarily

"so just you think you are old now, right that you changed to be old then"

"i think we would be young to after 50years old through keep the mind of young"


he said probably like it.. 

though the words from this drama is not so same with my situation, 

but i realized i should think more postively and i'm a only man who can't take care myself in directly and close to.




* involuntarily: 나도 모르는 사이에 (in·   vol·un·   tar·  i·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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踏板摩托车的构造 二

踏板摩托车的构造 二

  2008-05-27 20:17   阅读24   评论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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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变速和传动系统  

 (1)为什么需要变速器和离合器?  

我们在前边内容讲到,曲轴连杆将活塞的上下往复运动转换成曲轴的旋转运动,那么,曲轴的动力是如何传递到后轮的呢?我们知道,曲轴的旋转转速是很高的,2200转左右车子才起步,显然,后轮是不可能以这样的转速动作的,我们需要获得不同转速下的不同车速和扭矩,这个功能就由变速系统来完成。

除此之外,当我们飞驰时,我们需要将动力传送到后轮,当我们要停下来时,则需要能够切断动力,这个动作是由离合器来完成的。离合器在变速系统与传动系统之间,起一个柔和地传递动力(切断动力)的作用。  

 (2)变速器工作原理  

在讲解实际的GY6变速器之前,我们先来了解变速器的工作原理,这样会比较容易理解后述部分。简单地说,变速器就是根据这一原理来设计的:小齿轮(或小带轮)为主动轮传动大齿轮(或大带轮),则转速降低扭矩增加;大齿轮(或大带轮)为主动轮传动小齿轮(或小带轮),则转速增高扭矩降低。该原理不仅仅适用于踏板车变速器,而且适用于跨骑车变速器。

踏板车上的无级变速器,就是利用这一原理:当皮带在前主动轮、后从动轮上发生直径变化,车速和扭矩就发生相应变化。  

 (3)踏板车上的一次变速传动机构

踏板车上使用的是离心式无级变速器、离心式自动离合器,从字面上我们可以看出,变速和离合都是利用离心力来完成。图10-1是GY6的变速传动系统部分(皮带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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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0-1 皮带轮部分结构

如图10-1所示,皮带轮主要是由主动皮带轮和从动皮带轮两部分组成。图中部件1是从动皮带轮组件,部件2是从动板组件,部件3是离合器外套,部件1、2、3共同组成从动皮带轮。从动皮带轮在有些书上又叫"传动皮带轮"。部件4是滑动式驱动盘(有的书上叫滑动主动盘),部件5是配重滚子(台湾叫普利珠),部件6是斜坡板(又叫滑动板),部件7是斜坡板边件(有的书上叫滑动片),部件8是驱动皮带扇叶盘(有的书上叫主动盘),部件4、5、6、7、8构成主动皮带轮,主动皮带轮在有些书上又叫"驱动皮带轮"。各位看官看到这儿,可能会觉得比较麻烦,怎么这么多叫法,我想这是各个厂家自己的喜好吧。

图10-2、图 10-3给出了上述一些零件的实物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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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意:皮带安装时的方向记号

工作过程:(如图10-1)当发动机转速升高时,惯性离心力增大,离心滚珠(部件5)沿斜坡板(部件6)由里向外滚动,使滑动主动盘(部件4)向主动盘(部件8)方向滑动,同时V形皮带向外挤压,这样一来,V形皮带的直径由小变大。与此同时,由于V形皮带的内周长是一定的,在皮带张力的作用下,从动皮带轮克服弹簧压力,使滑动从动盘沿轴向离开从动盘,致使从动皮带轮上的V形皮带包角直径减小,此时车速升高。反之,当发动机转速下降时,由于惯性离心力的减小,以上部件做相反动作,致使V形皮带的前后半径发生相反变化,此时车速减慢。

讲起来比较枯燥,在这儿大家只要了解它的组成就行了,如果有机会打开发动机边盖(左曲轴箱盖),看看实物,就会明白。我在这儿借用一位师傅的话:很多问题,虽然在脑子里无法想象,但是见了实物,就迎刃而解了

(4)离合器

离合器就是图10-1中的部件2、3。图10-5是离合器蹄块,GY6的离合器内有三个蹄块,蹄块是被拉簧向内拉紧的,当发动机转速增高时,3个蹄块产生离心力,当离心力超过拉簧的预拉力并达到一定数值时(发动机转速增高至2200转以上时),蹄块与外沿的摩托盘贴合,产生磨擦力,进而构成一个力矩传递到变速箱主轴。当发动机转速下降(至1500转时),蹄块所产生的离心力不足以克服拉簧拉力,就不能与磨擦盘贴合,离合器就处于分离状态,此时传递到后轮的动力被切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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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踏板车上的二次变速传动机构

在前面第(3)中我们讲到踏板车上的一次变速传动,这里我们要讲二次传动。二次传动,一般是在曲轴箱后端装有齿轮箱,以进一步减速,就是我们经常说的减速箱齿轮,也就是我们平时按照说明书要求,定期更换齿轮油以润滑的部件,即是图10-6所示的齿轮组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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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0-6 GY6齿轮组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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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0-7 末级传动装置

齿轮组件在齿轮箱中的安装位置,如图10-7所示,回忆我们在本文第一部分第3点中所述,图10-7中的部件2是末级齿轮箱盖,部件1是主轴盖组,部件3、4、5是轴承(6204、6202、6203轴承),部件6是副轴(也叫驱动轴),部件7是副轴组件,部件8是主轴(也叫最终轴),部件9是最终齿轮。

注意到在这里我们多次用到了末级这个词语,也即是说,到了这里,动力就传递给最末的后轮轮毂了。

总结一下,结束第10大点,在变速和传动系统部分,动力的传递路线是:曲轴--->皮带轮无级变速---(1次变速传动)---->离合器----->末级齿轮组件---(2次减速传动)--->后轮轮毂。

11、润滑系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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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1-1 GY6机油泵

四冲程发动机的润滑,采用的是压力与飞溅相结合的方式, 图11-1是GY6的机油泵,关于此机油泵的原理,笔者尚未搞清楚,搞不清楚它是转子式油泵还是什么齿轮式油泵,有知道的朋友可以告诉我一下。但是可以肯定的是,图11-1所示的机油泵,将把曲轴箱中的机油加压后,输送到曲轴、凸轮轴、轴承等高速高负荷的零件表面。在气缸、气缸头中,有相关的油道以通过润滑油。对于难于实现压力润滑的部位,则利用曲轴、齿轮等旋转飞溅起来的、或者是重力下落的机油来润滑,如气缸壁、正时齿轮等。

GY6机油泵的位置:在曲轴箱中,拆下磁电机,拆下右曲轴箱盖、起动离合器、机油泵隔离板就可看到。机油泵通过机油泵驱动链条,被曲轴驱动。

12、启动机构

(1)脚启动机构

脚启动组件安装位置如图12-1所示,部件10是起动轴,部件11是起动惰轮组合,实物如图12-2、图12-3所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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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2-1 脚启动机构安装图

拆下起动磴杆,拆下左曲轴箱盖(图12-1部件13),你就可以看到:皮带,皮带套着的前端是叫主动轮,后端是从动轮,这你都可以不用管它。你需要注意的是这两者之间的二根轴,一个是起动轴组合(靠后)、一个是起动惰轮轴(在前)。

它们的工作过程是:脚踩动起动磴杆时,力量传递给起动轴,起动轴上的齿轮将动力传递给前面的起动惰轮,(起动惰轮是由起动惰轮轴固定在曲轴箱上的,),然后,起动惰轮上的齿轮片再将力量传递给曲轴,曲轴旋转,此时按动点火开关,汽缸里的汽油被点燃烧,从而发动机燃烧工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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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2-2 起动轴组合               图12-3 起动惰轮组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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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2-4 起动蹬杆

(2)电启动机构

电启动机构由启动开关、启动继电器、启动电机、单向启动离合器、蓄电池组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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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12-5 启动继电器          图12-6 启动电机

工作过程:用钥匙将电锁开关转至ON的位置,蓄电池电源接通,按下启动开关---->启动继电器工作(触点回路接通)----->启动电机运转(齿轮轴旋转并带动齿轮组合)------>单向启动离合器动作------>磁电机转子运转------>曲轴旋转------>活塞上下运动压缩------>点火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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发动机是gy6 50 皮带是669 淘宝搜索gy6 50 皮带很多.那不是前齿轮,专业讲叫普利盘.那个那个坏掉的,东西.买新的普利盘,是自带的.一套的东西.
里面的叫普利珠.后面的离合器.后面最外面的叫碗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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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대이주 100년 한·중·미·일 4개국 현장 보고


<2부> 유랑 ② 엘리트의 탄생

1980년대 말부터 조선족 젊은이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날품 팔아 돈 버는 조선족 부모들이 자녀의 유학비용을 뒷받침했다. 현재 일본에는 5만3000여명의 조선족이 체류하고 있다. 그 가운데 33%가 유학생이다. 일본에서 취업한 이는 27%인데, 상당수는 유학 직후 현지에서 일자리를 얻은 경우로 추정된다. 최고 학력의 엘리트들이 일본 체류 조선족의 주류를 이룬다. 한국 체류 조선족 대다수가 일용노동에 종사하는 것과 비교된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농사짓던 조선족 1세대, 외국에 나가 하층 노동을 담당한 2세대에 이어, 석사학위 이상 고학력에 한국어·중국어·일본어에 모두 능통하여 세계를 제 무대로 삼으려는 조선족 3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스메바 미야코'. 최인원(33)씨는 중국 조선족 학교에서 그 말을 배웠다. 참뜻은 일본에 와서 깨쳤다. '내가 사는 곳이 고향' 또는 '정들면 고향'이라는 일본 속담이다. 지금 최씨의 심정이다. 대지진의 공포조차 도쿄를 저버릴 이유가 되지 못했다. 도쿄는 살면서 정들어버린 그의 두번째 고향인 것이다.

공부 잘하는 조선족청년들은
중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유학을 떠난다.
한·중·일어가 가능하니 일본선 출세의 길이 열린다.


그는 중국 길림성 서란시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간 홀어머니가 그의 학비를 댔다. 베이징자오퉁(북경교통)대를 졸업한 뒤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일본 최대 생활용품 제조업체에 취직해 중국 수출 업무를 맡고 있다. 중국 국적의 본사 직원은 최씨가 유일하다. 회사는 일본인 입사동기를 제치고 그를 가장 먼저 계장으로 승진시켰다. 민족 차별은 없었다. 오히려 최씨를 배려했다. 지난 3월 대지진 직후 회사는 피해복구로 비상이 걸렸다. 그래도 일본인 부장은 최씨의 휴가를 허락했다. "알았네. 잘 다녀오게." 외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다녀오겠다는 최씨의 말에 주저없이 답해주었다.

일본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한국은 달랐다. 어머니를 만나러 설이나 추석 때 한국에 가면 택시기사부터 최씨를 무시했다. 최씨의 말투는 한국인과 달랐고, 그런 최씨를 택시기사는 서슴없이 무시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일할 생각은 없어요. 우리 부모들이 한국에서 괄시받은 것 생각하면 한국에 가고 싶지도 않고." 일찍 아버지를 여읜 최씨에게 '우리 부모'란 조선족 장년층 전체를 뜻한다. 그는 '차별'이 아니라 '무시'라는 단어를 골라 거듭 힘을 주었다. 조선족의 역사적·문화적 자존이 한국인에 의해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최씨는 내년에 일본 영주권을 받는다. 한국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도 일본에 모셔올 생각이다. 100년 전 일제에 의해 만주로 강제이주당했던 조선족의 후손은 이제 일본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역사는 때로 역설의 삶을 낳는다. 중국인들은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족 학교에서만 일본어를 제1외국어로 가르친다. 일제 침략과 만주국 시절을 겪은 조선족 가운데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엘리트가 많았다. 중국 건국 이후에도 그들이 민족 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고, 그 맥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문장구조가 같다. 조선족 학생은 한족 학생보다 더 빨리 일본어를 익힌다.

중국 동북의 조선족 농촌마을에 갇혀 있던 일본어 사용자들은 1980년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80년대 초반 집권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유학생 10만명 유치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의 지적·문화적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두고 아시아 각 나라의 학생에게 유학의 문호를 개방했다. 일제 통치에서 비롯한 조선족의 일본어 실력은 일본 보수정객의 정책에 의해 만개했다. 조선족 중점학교(성적 상위 학생들만 입학하는 명문학교) 졸업생의 절반이 일본으로 진출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일본 유학은 공부 잘하는 조선족 학생들의 꿈이 됐다.

덩샤오핑은 그런 조선족 엘리트들에게 엔진을 달아줬다. 문화혁명 이후 사실상 폐지됐던 중국의 대학입시가 1978년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부활했다. 출신성분 등에 따라 결정됐던 대학 입학 기회를 모든 중국인에게 개방한 것이다. 오직 소수의 학생만 연변대 등 민족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조선족은 베이징·상하이 등 내륙의 중국 명문대로 눈을 돌렸다.

이미 그들의 교육열은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가장 높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 1952년에 소학교(초등학교), 1958년에 초중학교(중학교)를 의무교육화했다. 1950년대에 민족대학 3곳의 설립을 마쳤다. 지금까지도 민족별 인구비례로 볼 때, 조선족 대학생이 한족의 3배, 다른 소수민족의 5배가 넘는다. 자녀를 민족대학 또는 중국 내륙 대학에 진학시킨 뒤 일본으로 유학 보내는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모든 조선족 부모의 꿈이 됐다.

최씨와 함께 길림성 서란조선족제일중학교를 졸업한 80여명 가운데 15명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거나 취업했다.(표 참조) 그 가운데 한 명인 최영국(33)씨는 서란조중 이과반을 졸업했다. 초중(중학교)·고중(고등학교) 내내 일본어를 배웠다. 그것은 일본 기업에 취업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길림성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 석달 만에 일본의 정보통신기업에 취업했다. 중국 다롄에 있는 지사에서 2년간 일을 배우고 도쿄의 본사로 옮겨왔다.

일본 기업에 조선족은 '고급 인력'이다. 1990년대부터 중국 투자를 시작한 일본 기업들은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인재를 구했다. 조선족 엘리트들이 여기에 화답했다. "고중(고등학교)을 마친 조선족의 상승욕구가 제도적 장벽에 막혀 있었는데, 중국에 투자한 외국계 기업이 그 길을 터줬다"고 박광성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 교수는 분석한다.

일본조선족 5만3천명 중 33%가 유학생이고
대다수가 일본서 취업에 성공한다.
"괄시하고 무시하는 한국선 일할 생각 없어요."


일본 기업의 임금은 중국은 물론 한국 기업보다 훨씬 높다. 최영국씨는 현재 약 500만엔(약 73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중국 톈진의 한국 대기업 중국법인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두 살 위 형보다 연봉이 높다. 일본 체류 9년 만인 올해 초 최영국씨는 3500만엔짜리 '맨션'(고급아파트)을 구입했다. 도쿄 서쪽 교외 사가미하라의 맨션은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이 함께 살기에 충분했다. 평생 농사를 지은 부모와 함께 살던 길림성 서란의 낡은 시골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길림성 농촌마을의 시골집에서 도쿄 교외 맨션으로 향하는 중간에 한국이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신분상승의 기회를 거머쥐려면 돈이 필요했다. 조선족이 농사지어 버는 소득은 지금도 연간 3000~4000위안(약 54만~72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조선족의 '한국 바람'은 일본 또는 중국 내륙 대도시에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만난 조선족 유학생 대다수의 부모는 여전히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조선족의 미래를 짊어진 '일본유학파'들이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있다. 일본이 그들에게 제공한 기회가 많긴 하지만 굳건히 정착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동아시아 3국이 조선족에게 덮어씌운 '유리천장'이 있다. 서란조중 졸업생인 임철(34)씨는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과의 한족 동창들은 대부분 공무원이 됐다. 임씨는 일본 유학을 택했다. 중국은 '관시'(關係·인맥)가 지배하는 사회이므로 조선족 공무원의 한계가 뻔하다고 생각했다. 임씨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족 엘리트들이 중국 최고 권부에 접근하지 못하는 역사의 뿌리는 깊다. 1930년대 '민생단' 사건 때 중국 공산당은 조선족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일제 간첩으로 몰아 숙청했다. 1960년대 '문화혁명' 시기엔 항일운동가 출신의 조선족 지도자들이 개량주의자로 몰려 대거 숙청됐다. 이후 수십년 동안 영민한 조선족 젊은이는 문과 대신 이과를 택했다.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조선족에겐 '영수 인물'이 없고, 민족의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 정치적 지도자 그룹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업 분야를 떠나면 일본 고위층 역시 이민족에게 배타적이다. 임씨는 얼마 전 함께 베이징대를 졸업한 조선족 친구를 만났다. 그는 일본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일본 최대 규모의 법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줄만 알았던 친구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법률회사의 임원급 변호사로) 절대로 못 올라갈 거야." 그의 연봉은 같은 경력의 일본인 변호사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 그들 조상의 원래 고향인 한국은 일용노동에 지친 그들의 부모를 함부로 괄시하는 나라인 것을 조선족 최고 엘리트들은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조선족 3세대의 뒷바라지는
한국에서 돈벌이를 하는 부모들의 몫이다.
그들의 꿈은 '자식의 성공'이다.


도쿄의 어느 연구소에서 일하는 임씨는 요즘 대학교수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일본 대학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어·중국어·일본어·영어에 능통하다. 어느 나라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돌아갈 고향은 없다. 일본에 진출한 15명의 서란중 동기 가운데 8명이 중국에 돌아갔지만, 고향인 길림성 서란에 정착한 친구는 한 명도 없다. 그들의 부모 역시 서란의 농촌마을을 떠난 지 오래다.

그 마을에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강에서 썰매를 타고 돌멩이를 팽이 삼아 지치며 까불었다. 다만 이제 청년이 된 그들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고향 마을에는 일자리가 없다.

도쿄/글·사진 유신재 기자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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